정치 정치일반

[생생 정치 인사이드] 봇물터진 실명법.. ‘법안 네이밍’ 효과는

김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6.06 17:11

수정 2014.11.06 04:57

[생생 정치 인사이드] 봇물터진 실명법.. ‘법안 네이밍’ 효과는

사회적 파란을 일으킨 주인공 이름을 내세운 법안들이 새로운 입법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국회 입법화 과정에서 법안의 내용을 쉽게 알리기 위해 사회적 사건의 당사자 이름을 '네이밍(naming)'해 법안의 별칭을 만드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 과거 '최진실법'을 시작으로 최근 '전두환법'까지 이들 실명법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정치전문가들은 "'법안 네이밍'은 일반 국민에게 정책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일종의 프레임(frame)을 선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법안 네이밍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선호, 기억, 태도 등에 지속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같은 실명법안이 자칫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될 가능성도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책임실명제 형태, 즉 대표발의 의원의 이름을 게재한 실명법이 정착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입법화 과정에 여론 집중 효과

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관계자들은 '실명법의 역할론'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린 반면 일부 시민단체들은 '쇼 비즈니스적 접근'이라며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외국에도 수많은 사건에 대한 대응 법안이 실명법 형태로 발의되고 있다"면서 "이는 일반 국민이 법안 처리 과정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당장 6월 임시국회에서는 '전두환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상태다. 민주당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의 역외탈세 의혹을 고리로 추징금 미납 문제를 쟁점화, 총 5건의 관련 법 개정안을 제출한 것. 실제 법률명은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 일부 개정안' 등으로 길고 난해하지만 '전두환법'이란 타이틀로 여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내달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최진실법(친권 자동 부활 금지제)'을 비롯해 △나경원법(허위사실 유포 처벌 강화) △정봉주법(의혹제기 처벌 요건 강화) △김영란법(공직자들의 사익 추구 원천 금지) 등으로 불린 법률안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를 국회 의안과에 정식 등재한 경우는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한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서 위해를 가하자는 종류의 법안에 대해서는 실명을 거론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관계자는 "의안이나 법률명은 특별한 기준이 아닌 관례에 의해서 정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실명법을 별칭으로만 사용하는 것은 처분적 법률이란 인상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 이론상 행정이나 사법적인 처분의 효과를 가진 법률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발의의원의 책임실명제로 가야

정치권 일각에서는 실명법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자칫 여론에 휩쓸려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인기 영합주의로 입법 논의가 흐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사회 이슈에 편승한 법안을 발의, 여론몰이만 해놓고 법안 심사 및 처리 과정은 외면하는 의원들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들 실명법의 통과율은 10%대로 굉장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 의원들이 언론 노출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관계자는 "실명법의 국회 논의과정을 보면 과연 통과 의지를 갖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며 "일부 법안들은 로비에 막혀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나경원법과 정봉주법의 경우,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입법전쟁을 치렀지만 변죽만 울리다 18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더욱이 최근에는 같은 사안에 대해 여러 가지 법안이 집중 발의되고 있어 소관 상임위에서 위원회 대안으로 병합심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대표발의 의원을 확인할 수 없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우려가 있다.

민주당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예전에는 통과될 법이 아니면 발의도 안 했는데 요즘은 무조건 발의한 뒤 위원회 심사 절차에서 숙려되는 식으로 가고 있다"며 "일부에서는 급조한 법안이란 지적도 하지만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책임실명제 형태로 가는 단계로의 실명법, 즉 발의 의원의 이름으로 실명법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의원입법의 경우, 해당 법률안의 부제로 발의의원의 성명을 기재할 수 있다.

이른바 '법안 실명제'로 과거 '오세훈법'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 16대 국회 당시 초선의원이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정치개혁특위 간사를 맡아 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시 오 전 시장이 17대 총선 불출마라는 정치적 배수진을 치면서까지 법안 처리를 주도했고 이후 이들 정치관계법들은 '오세훈법'으로 병기되었다"면서 "그러나 요즘은 본인이 대표발의한 법안심사에 불출석하거나 투표를 하지 않는 의원까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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